<aside> 💚 울산 - 슬도(瑟島) 울산 근처에서 사람이 거주하는─대표적인 섬은 동구 방어진에 있는─슬도(瑟島)가 있습니다. 슬도는 '갯바람과 파도가 부딪힐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는 유래를 가진 작은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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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1 외할아버지는 지역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역술인이자 한의학에 정통한 분이었다. 엄격하고 깐깐한 성정으로, 어린 손자를 앉혀두고 천자문과 명리학, 그리고 본초강목을 가르쳤다.


할아버지는 지병으로 늘 골골대셨기에, 의진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일 약탕기 앞에 앉아 부채질을 해야 했다. 약재가 끓으며 내뿜는 쌉싸름한 냄새는 지긋지긋한 바다 비린내를 덮어주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때 배운 맥 짚는 법, 약재의 배합, 그리고 사람의 운명을 읽는 법은 훗날 그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닌 '사람을 다루는 기술자'가 되는 기반이 되었다. (반면, 할머니는 병풍처럼 조용한 분이었다. 상냥했지만 깊은 정을 주지 않는, 마치 타인 같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수동적인 관계였다.)

■■ NO.2 의진에게 진짜 기술을 가르친 스승은 따로 있었다. 도망간 어머니와 얼굴이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바로 이모였다. 그녀는 죽은 자를 닦고 입히는 장의사(葬儀師)였다. 그녀는 감정이 없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조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손이 필요해서, 혹은 자신이 아는 것을 데이터 전송하듯 알려주었다. 의진은 이모의 영안실에서 혈자리를 배웠다. 산 사람의 혈(穴)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굳어가는 근육과 관절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어떤 화학 약품(포르말린 등)이 살을 썩지 않게 하는지, 혹은 흔적 없이 녹이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지만, 서늘한 시체 냄새를 풍기던 이모는 그에게 가장 '가족'에 가까운 존재였다.

■■ NO.3 중학교(울산학성남중)에 진학하며 그는 도망치듯 섬을 빠져나와 울산 시내의 기숙사로 들어갔다. 어차피, 섬에는 중학교가 없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범생 이미지 덕분에 뭇 어른들의 신뢰를 받았으며, 선도부, 학생부를 거치고, 높은 성적으로 명문고에도 들어갔다. 그래봤자, 여전히 비릿한 바다 냄새는 피하지 못했다. 하물며, 그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외삼촌도 사라졌다. 시인이 되고 팠던 소년은 더이상 시를 짓지 않았다. 적어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부주의하게 떠드는 소리로 인해, 삼촌의 실종 배후에 한평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연달아 지역 주민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행방불명되자, 누구도 더 이상 항의하지도 못했다. 외삼촌의 실종 이후, 외할아버지의 병세는 더 악화되었다.


녀석과 함께 조부모님의 장례를 치른 이후, 그는 다신 이 징글징글한 바다를 보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러나 육지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바다의 비린내가 싫어 육지로 왔지만, 그보다 더 비린 핏물로 삶을 적셨다.

■■ NO.4 이모가 데려온 모지리 녀석. 엄연히 저보다 이틀 더 늦게 태어난 주제에, 자꾸 <형>이라 주장한다. 출생신고를 늦게해서 그렇지, 자신이 더 먼저 태어났다고 주장해댔다. 말도 안되는 소리. 키도 저보다 훨씬 작은 주제에 말이다. 어쩌다, 이모는 저런 철부지 같은 아들을 낳았을까. 아무리봐도 제가 더 이모를 닮았는데 말이다. 물론, 이모는 바람 같은 사람이라서, 친아들을 맡기고 사라졌다. 그렇다고 무책임하도고 볼 수 없었다. 이모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찾아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가르쳤으니깐. 그렇지만, 이 모지리 녀석을 두고 간 것은 최악이다. 이제는 자기가 할아버지의 수제자라고 주장하지 않는가. 위아래도 없는 녀석.


조부모님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 날은 유독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녀석과 나는 장례를 치뤘다. 이제 이 섬에 남은 것은 없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후 만남을 최소화했다. 뭐, 워낙 사고뭉치라 원치않아도 녀석에 대한 소문은 건너건너로 들려왔다. 풍수를 읊으며, 여기저기서 사기를 치고 다니는 모양이다. 역시, 두 놈다 속을 썩이는 녀석들이었다. 천지인 중에서 할아버지는 모든 근간인 천(天)에 해당하는 명리를 중시하였지만, 결국 두 손자는 돈이 되는 인(人)인 한의학, 지(地)인 풍수지리학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이 3개는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다. 노인네가 안타깝게도 자식 농사, 손자 농사는 망한 듯 싶었다. 그래봤자, 무덤은 말이 없을테지만.